결혼지식/전통결혼풍습

폐백은 육포나 닭중 한가지만 해도 된다.

홀기 2007. 4. 17. 16:48
폐백을 닭으로 하느냐? 육포로 하느냐?
사실상 명확한 구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요즘은 전국 어디서든지 결혼식을 올리는 순서나
폐백을 드리는 절차 및 폐백내용도 거의 같지만
'원래'는 어땠느냐를 따지면 이건 상당히 복잡해 집니다.
왜냐면 패백으로 준비하는 것이 각 지방마다 차이가 있었으며
또 같은 지방에서도 가문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시아버지용인 대추,밤고임은 접어 두고
시어머니용인 육포나 폐백닭만을 두고 볼 때
옛날엔 서울지방에선 주로 육포를 사용했으며 나머지 지방에선 닭을 사용했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일단은 그런 재료를 구하는 것과
장만을 하는데 있어서 주어진 환경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나 짐작이 됩니다.
좌우간 쇠고기든 닭고기든 고기를 사용한 건 마찬가진데
서울에선 집집마다 닭을 길렀던 것은 아니며,
쇠고기를 쉽게 구할 수가 있었으니까 굳이 닭고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당시 지방에선 우선 주업이 농업이었던 바 소는 농사 일을 하는데
없어선 안되는 아주 중요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부잣집이라도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잡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곤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우선 지방에선 육포를 만들고 싶어도 쇠고기를 구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서울에선 당시에도 정육점이 있었으며 양반가에선
쇠고기를 많이 먹었으며 쇠고기를 수시로 납품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쇠고기로 육포나 편포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입니다.
흔히 육포는 많이 알지만 편포는 또 뭔가?
육포는 쇠고기를 넓적하게 썰어서 그대로 말린 것이며
편포는 고기를 그대로 말리지 않고 잘 다져서 부드럽게 하여 말린 겁니다.
그리고 더운여름철에는 부패를 막기 위하여 간장과 꿀을 달여서 양념을 한
'약포'나 소금과 후추를 뿌린 '염포'를 사용했었습니다.
서울에 비해 쇠고기를 구하기 어려웠던 지방에선
처음에는 산에서 꿩을 잡아서 사용했지만 꿩을 구하기가 어려운
평지에선 꿩 대신 집에서 기르는 닭을 잡아서 마치 숫꿩처럼
꾸며서 사용했던 것이 오늘날의 폐백닭이 된 것입니다.
위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재료의 공급 때문에
육포나 닭중 한가지를 선택하게 된 것이지 지방에 따라서
어느지방에선 육포를 해야 하고 어느 지방에선 닭을 해야 하는 걸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육포나 닭 한가지만 사용하면 되는데,
오늘날은 육포든 닭이든 집에서 직접 장만하는 경우는 없으며
어떤 것이든 전화로 주문하고 돈만 보내면 정해진 날짜에 배달을 해 주니까
어떤 것을 준비하든 돈만 내면 간단하게 해결이 되니까
'기왕이면...'이라고 생각하여 두가지 다하는 분들이 많아 졌습니다.
뭐 두가지를 다해도 상관은 없으며,
양도 얼마를 하든 상관은 없지만 다만 옛날이면 안해도 될 것을
어떻게든 돋 보이려는 신부측의 욕심 때문에 육포와 닭 두가지를
모두 다하는 걸로 점차 굳어져 가는 추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시할머니가 계시면 닭을 꼭 해야 한다'는 것도 맞지가 않습니다.
옛날에도 서울이나 대부분의 지방에선 시조부모가 계셔도
폐백은 시부모에게만 드리는 것이기에 조부모용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대부분의 예절이나 격식은 귀족들이 정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잘 나가는 양반가문에서
기왕 정해진 관습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그기에다 '기왕이면...'식으로
하나씩 더 보태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때 한창 잘나갔던 안동김씨가에선
원래는 자기네 고항인 안동에선 폐백으로 닭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잡아 서울에서 양반노릇을 하다가 보니까 서울 토박이
양반들은 닭을 사용하지 않고 쇠고기를 말린 육포를 하용하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그런 서울 양반가에 딸을 시집보낼 땐 자기네 관습대로
폐백닭을 보내지 않고 쇠고기로 육포나 편포를 만들어 보냈던 것입니다.
그기다가 한술 더 떠서 신랑쪽에 시할머니가 계실 땐
안동식 폐백닭을 해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의 양반이 안동김씨네 딸을 며느리로 맞고 보니
폐백으로 육포를 거하게 해서 보낸 것은 물론 시할머니용이라고
멋지게 꾸민 폐백닭이란 걸 보내오니 서울 양반들 눈이
휘둥그래질 것은 당연했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서울 토박이 양반들은 수저도 은수저를 사용치 않았으며
밥을 지을 때도 콩이나 팥등 잡곡을 섞어서 잡곡밥을 해 먹었는데
안동김씨네 한번 가보면 그집에선 아이들까지도 은수저를 사용하질 않나
밥도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새하얀 쌀밥에다 생전 처음보는 반찬으로 차린
밥을 한번 얻어 먹어 보니 지금까지 자기네는 헛살았다고 할 정도로
안동김씨들은 기존의 서울 양반들 기를 팍 죽였다고 합니다.
 
그 옛날 안동김씨 뿐만 아니라 잘나갔던 양반가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정해서 자기네의 세를 과시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 결혼을 하시는 분들 중에도 과거 안동김씨들이
한 것과 같이 상대방 기죽이기 작전을 하시려는 분들이 없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과거 안동김씨네처럼 제대로 알고 다듬어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돈만 버리고 상대방 기를 죽이긴 커녕 욕만 먹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아시고 잘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