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지식/결혼상식

'이바지'란 '잔치음식'이란 뜻이다.

홀기 2007. 4. 17. 16:04
신부집에서 신랑집으로 보내는 음식을 '이바지음식'이라고 합니다만
'이바지'란 말을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한다.'에서 처럼 '헌신', '도움'의 뜻으로
이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 듯 합니다만 신부집에서 신랑집에으로
보내는 음식인 '이바지'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원을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만 원래의 뜻은 그냥 '잔치음식'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그냥 '이바지'라고만 해야지 '음식'을 붙여서
'이바지음식'이라고 하는 건 '역전앞'처럼 같은 뜻을 두번 쓰는 셈이 되니까
그냥 '이바지'라고 하셔야 옳습니다.
 
그런데 왠 '이바지(잔치음식)'을 보내는가?
옛날 전통 혼례에서 요즘의 결혼식에 해당되는 '친영'을
요즘처럼 예식장 제3의 장소에서 한 것이 아니라 신부의 집에서 치뤘습니다.
물론 신부집에선 음식을 장만하고 하객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치룬 다음에 첫날밤은 요즘처럼 신혼여행을 가서
호텔에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신부의 집에 마련된 신방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신랑이 신부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바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 오는 것이 아니라 3일정도 있다가 데려 옵니다.
경우에 따라선 훨씬 오래 신부집에서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율곡선생의 모친이신 신사임당의 경우 바로 서울에 있는 시댁으로 가지 않고
친정(지금의 강릉)강릉에서 아이까지 낳아서 어느 정도 기를 때까지 지낸 것로 압니다. ^ ^
 
좌우간 신부집에서 잔치를 치루고 며칠 후에 신랑이 말을 타고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신랑집으로 가게 되는데 이를 '신행'이라고 합니다.
그때 신부집에서 장만한 각종 혼수며 음식이며 잔뜩 가지고 갑니다.
그때 준비해서 가는 것중에 시댁에 도착하여 시부모님께 첫 인사를 올릴 때
드릴 '폐백'은 물론 신부집에서 잔치 때 장만했던 음식(잔치음식=이바지)도
함께 갖고 가는 겁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는 신부집에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집의 식구들이 
모두 참가하는 것이 아니고 혼주인 신랑의 아버지만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잔치음식 일부를 신랑집에도 좀 보내는 것이 바로 '이바지'인 것입니다.
비록 잔치음식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신부집에서 잔치를 치룰 때 장만했던 음식은 아니고
별도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장만을 합니다.
옛날의 이바지는 요즘 이바지에 비할 바가 안됩니다.
요즘은 이바지가 양이 아무리 많아도 한 바구니는 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옛날엔 그 양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본 기억만으로도 '유과'만도 큰 소쿠리로 하나 가득,
그리고 엿이 또 한광주리, 각종 과일이 큰 상자로 하나, 각종 전종류가 한 광주리에다
떡이 또 한 광주리, 그기에다 평소에 보기 드문 각종 생선들...
좌우간 그걸 모두 모으면 용달차로 한차는 될 겁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집에선 모두 합해서
한 광주리 정도(요즘의 이바지 정도의 양)는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시집에 도착하여 먼저 시부모님께 폐백상를 차려 놓고 현구고례를 합니다.
그런 다음엔 집안에 사당이 있으면 사당에도 별도의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올립니다.
옛날 양반집에는 집안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신랑집에서 하룻 밤을 자고 나면 새색시가 처음으로 부엌에 나가서
시부모님께 첫 아침밥을 지어 드리는데 처음 시집간 새색시가
시집의 살림도 파악하지 못하고 더구나 그집 부엌이라곤 처음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음식재료로 음식을 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바로 그점을 잘 알기 때문에 친정 어머님께서 딸을 위하여 온갖 반찬거리를
미리 준비하여 이바지와 함께 보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새색시는 친정에서 가져온 이바지중 일부를 이용하여 다시 덥힐 것은 덥히고
구울 것은 다시 굽고 하여 첫날 아침밥상을 정성껏 마련하여 시부모님께
밥상을 올리고 시부모님께서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옆에 서 있는 겁니다.
이거 생각만 해도 무지 힘들겠지요?
 
그럼 신랑집에선 얻어 먹기만 하고 신부집에 아무 것도 안 보내주느냐?
그건 아닙니다.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음식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를 시작하다가 적당한 때에
새색시를 친정에 한번 보내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근친'입니다.
빨리 보내는 집에선 3일 후에 보내기도 하지만 통상 몇 달 후에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새며느리가 첫 친정에 갈 때는 시댁에서 음식을 장만해 줍니다.
이바지처럼 거창하게 마련하진 않지만 그래도 떡도 하고 술도 빚고
고기도 장만하고 왠만큼 장만을 해서 며느리를 친정에 보냅니다.
그때 친정에 갈 때는 혼자서 가는게 아니고 신랑을 달고 함께 갑니다.
친정에 도착하면 부모님께 부부가 함께 큰 절을 올리고 시댁에서 가져온
음식을 드립니다. 물론 이 때는 신부의 일가 친척들이 다 모여서
신부가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이 때 재미있는 것은 신부의 친정 동네 총각들이 그날 저녁에
신부집에 몰려 와서 소위 '신랑달기'란 것을 하는데 여럿이 달려 들어
신랑이 꼼짝 못하게 발을 높이 쳐들고는 장작개비로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겁니다.
물론 신랑은 죽어라고 소리를 지르지요. 진짜로 때리니까 무지 아프니깐 ~
그러면 장모가 나서서 무마를 시켜야 됩니다.
동네 청년들에게 술과 음식을 잔뜩 갖다 바치는 겁니다.
그래야만 사위가 덜 맞거든요...
그렇게 신부의 이웃 청년들이 신랑을 다루는 것은 신랑이 신부를
두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바닥을 때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소에 노리던 처녀를 빼앗긴데 대한 분풀이도 다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옛날 전통 혼례식 때의 일부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이
'폐백'이며 '이바지'인 것입니다.
하지만 폐백이며 이바지가 신부집에서 신랑집으로 보내 지는 건 맞지만
요즘 신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갖다 바치는 것'은 절대 아니니 그에 대해서
너무 억울해 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요즘엔 혼례 절차가 옛날처럼 진행되지 않으니깐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 곧 바로 폐백을 차려 놓고 '현구고례'를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 와선 이바지를 장만하여 시댁으로 보내는데...
이런 요즘의 절차는 옛날 풍습을 흉내를 내진 하지만 앞 뒤가 안맞게 뒤죽박죽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신부집에서 이바지를 보내오면 며느리를 첫 친정을 보내는
근친을 보낸다고 생각하고 신랑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새며느리편에
들려서 보내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이걸 '답바지'라고 해야 되느냐?
'답바지'안 말은 문법에도 맞지 많고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그냥 '근친음식' 또는 '답례음식'이라고 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옛날 혼례 풍습을 잘 알지 못하면(실제로 어른들도 잘 모릅니다.)
신랑집에선 얻어 먹기만 하고 입다물고 가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신랑집으로부터 '답례음식'을 받을려면 그런 점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누구한테 알려 주느냐? 시부모님께 직접?? 그랬다간 좋은 소리 못 듣게 되니까
신랑될 분에게 간접적으로 알려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들을 땐 '알았어'라고 대답을 하지만 막상 잊어 버릴 확율이 아주 높으니깐
꼭 신랑쪽에서도 '답례음식'을 받아 먹어야만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재차, 삼차 신랑될 분에게 그 점을 세뇌를 시키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란 말은 결코 광고문구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