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식/동남아·아시아

은둔의 나라 미얀마의 이해

홀기 2006. 3. 21. 11:55

미얀마(Myanmar)라는 나라에는 수식어가 참으로 많습니다.

자원의 보고, 은둔의 나라, 불교의 종주국, 보석의 나라, 티크의 나라, 대영제국과 맞서 60여 년의 전쟁을 치른 나라, 황금의 땅, 탑의 나라, 세계 최장의 군사 독재 국가, 가장 폐쇄적인 국가, 남녀 모두가 치마(론지)를 입고 사는 나라 등 등.. 지구상에 이렇게 다양한 수식어를 나라 이름 앞에 달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또하나의 수식어가 있습니다. '아웅산테러의 나라' 전두환 대통령 당시 미얀마(당시엔 버어마였슴)를 방문 미얀마 영웅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 때 북한의 테러가 있었는데, 북한테러범의 착각으로 다행히 전두환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대통령의 목숨은 건졌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장차관급 우리나라 인사들이 사람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당시 전두환대통령이 사고를 당했다면 우리나라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좌우간 각종 자원을 두고 말한다면, 미얀마는 복 받은 나라인데, 세계적으로 가장 못사는 나라들중 하나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올라 있는 어떤 분의 여행기에 포함된 미얀마에 대한 자료입니다. 미얀마를 이해하는데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농업
1년에 3모작 되지요, 비료 주지 않아도 비옥한 땅입니다.(한때는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이었습니다. 지금은 전국민의 반 이상이 1일 2끼, 10% 정도는 1끼로 해결하지만 )

수산업
미얀마 지도를 보면 아래 부분에 태국과 함께 밑으로 길게 쭉 말레이 반도를 향해 내려가는 서쪽 땅이 다 미얀마 땅입니다. 안다만 해(Andaman sea)와 벵갈 만(Bay of Bengal)의 반이 그네들의 영역입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싱싱한 횟감하며, 새우, 바닷 가재 등등등... 그러나, 미얀마 사람들은 바다 고기는 맛이 없다고 잘 안 먹습니다.  그리고 내륙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르며 미얀마의 젖줄 이와라디(Iwaradii)강이 흐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주로 여기서 나는 민물 생선을 먹습니다.
    
임업
녹색의 금(Green gold)이라 불리우는 티크(油木)를 비롯하여 黑檀(흑단,Ebony), 香檀(향단, 백단,Sandalwood), 紫檀(자단,Padauk,일본에서 가링, 한국에서 화류목花柳木, 중국에서 화리花利)등 고가의 수종이 널려 있습니다. 목재를 값으로 환산한다면, 미얀마의 삼림 값어치는 세계 제1위입니다. 도끼로 찍어서 베고, 30,000마리에 이르는 코끼리로 운반하는 원시적인 벌목 이외에 아직까지 상업적인 벌목을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자연 환경 보호에 1등 국가라던 관리들의 말은 이번 북부 지역의 민둥산을 보면서 조금은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업
납, 아연, 주석, 원유, 개스,... 정부가 개발 안하고 대부분 그냥 놔 두었습니다.  왜 그 땅에 있는 것이 어디 가겠습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보석
이 나라에만 생산되는 비취(Imperial jade,玉)와 피젼 블러드 루비 (Pigeon blood Ruby 구혈홍옥鳩血 紅玉 비들기 피 색상의 루비) , 사파이어 (Sapphire 청옥 靑玉) , 금, 은 등등 엄청난 보석 광맥들...

아~~~ 이 나라의 자원을 열거하면 한국 사람 배 아파서 못 삽니다.

옛날 영국이 붙인 이름이 버마(Burma), 그것을 독립 후에도 쭉 사용하다가 1989년 군사 정부가 미얀마 연방국 (Union of Myanmar)으로 개명을 하여 미얀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웅산과 우누가 영국과 협력하여 일본군을 몰아낸 대가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1948년이고, 우누 정부의 총사령관이었던 네윈(Ne win)이 우누를 축출하고 군사독재 정권을 수립한 것이 1962년이니, 지금 벌써 40년째, 네윈의 절대 지배하에 이 나라가 통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1981년 모든 공직에서 사임하고 형식적으로는 뒤로 물러나 있지만, 그의 절대 권력은 생전의 등소평처럼 그가 키운 군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정보 책임자 킨뉸 수상(군서열 3위)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재건 최고회의나, 국보위 같은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의 제1서기입니다.

2001년 12월 현재의 미얀마 권력 핵심부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국가평화개발회의(SPDC) 서열 1위 의장 겸 국가 수반 : 땅쉐(Than Shwe) 대장 – 현재 원수
국가평화개발회의(SPDC) 서열 2위 부의장 군 총사령관: 마웅에 (Maung Aye) 중장 - 2003년에 대장 – 현재 부원수
국가평화개발회의(SPDC) 서열 3위 정보책임자 겸 수상 : 낀뉸(Khin Nyunt)소장 - 2002년 중장 – 2002년 네윈 축출에 앞장 – 2004년 10월 실각  - 현재 공군 사령관 소윈(Soe Win) 중장으로 교체

이 3인간의 권력은 땅쉐20%, 마웅에 40%, 낀늉 40%의 지분으로 생각됩니다. – 이 지분은 실질적으로는 네윈이 내정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2002년 92살의 네윈이 믿었던 심복 낀뉸에 의해 가택 연금되고 그 해 12월에 화병으로 그가 숨지고 난 후 현재, 권력을 향한 별들의 전쟁이 양곤 하늘에는 계속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는 네윈이 실권하기 전인 3년 전의 상황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 4700만~5200만에 국토 면적은 남한의 대략 7배 정도 크기의 나라입니다. 여러 소수 민족이 많지만, 대표적인 7개 민족이 있으며, 그래서 7개의 부족 자치주와, 7개의 행정 주로 이 나라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버마족이 전체 인구의 70%를 점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 시절, 이 70%의 버마족을 철저히 무시하는 정책을 펴 왔습니다. 일부 소수 민족에게 말단 관직을 주어 버마족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경제권은 수리에 밝은 인도인을 이주시켜 이들에게만 부여 하였습니다. 안다만(Anadaman)의 호랑이를 고양이도 아닌 집 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1824년부터 시작된 영국과의 62년간의 길고 긴 전쟁이 끝나고 전 국토가 완전히 영국의 식민지가 되던 해가 1885년, 그리고 독립을 쟁취한 해가 1948년이니, 그 시련의 기간이 길게는 125년에서 64년이나 됩니다.

나라를 뺏긴 것도 서러운데, 머슴이나 이웃 친구한테 종살이 하는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버마족 니 들은 그냥 농사나 짓든지, 물고기나 잡던지 그거나 해, 공부를 해서도 안되고, 면서기를 해서도 안되고, 장사를 해서도 절대 안돼! 그리고 농사 열심히 안 지으면 너희들 농토에다가 나무 심어 버린다.”  

그래서 영국이 인도에서 들여다 조림한 나무가 녹색의 금(Green gold)으로 불리우는 티이크(Teak, 油木)라는 나무입니다. 나중에 백 년이나 이백 년 정도 지나면, 잘라서 가져 가려던 대영제국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지금은 미얀마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귀한 소득원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미얀마산 티이크 목재의 가격과 미국산 미송의 가격을 보면 50배의 가격차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인삼이,  미국산이나, 중국산보다 효능이 좋은 것처럼, 미얀마 티이크는 아름다운 색상과, 뛰어난 내구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나무는 특성이 천연적인 방부 방충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거의 반영구적으로 썩지 않는 특성이 있으며, 최고급 가구재로, 호화 유람선의 제조에 시용됩니다. 우리나라 S그룹의 회장님 댁은 대를 이어 이 나무를 사용하여 집을 짓고 있습니다.

서방 열강에 대한 뿌리깊고 사무친 원한이 아직까지 이네들이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원인이라 생각되며, 쇄국 정책의 근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근 나라 태국과의 큰 전쟁에서 한번도 패 한적인 없는 안다만의 호랑이는, 이 지역에 교두보를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의 끊임없는 마찰과 대립으로 인한 고립으로, 지금은 국민소득 150달러가 안되는 아시아 최빈국이 스스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