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지식/결혼상식

옛날 신부에 비하면 요즘 신부들 꾸밈비는 껌값

홀기 2007. 4. 17. 16:52
요즘도 신부가 족두리를 쓰고 전통결혼을 하시는 분이 있긴 하지만
아마 거의 대부분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양식 결혼식을 올릴 겁니다.
하지만 결혼식은 그렇게 하드라도 결혼식 끝나고 나면
곧 바로 폐백실로 가서 폐백을 올리게 되는데
그때만큼은 전통신부차림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머리에는 족두리 아니면 화관을 쓰게 마련입니다.
화관과 족두리는 다른게 아니라 같은 겁니다.
족두리를 좀 더 화려하게 고친게 화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좌우간 신부가 족두리를 쓴 것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알고 보니 별로 오래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더군요.
그러니까 조선조 영조임금 때인 1750년대 후반경에
어느날 영조임금이 궁중의 여인네들은 물론 양반가 여인네들은
모두 앞으로 족두리를 쓰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어째서 임금이 여인네들 헤어스타일까지 간섭을 하게 되었을까?
그 사연을 알고 보니 임금이 직접 나서서 그런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당시 여인네들이 머리모양 내는데에
너무 많은 돈을 들이는 사치가 극에 달했답니다.
도대체가 머리를 어떻게 치장을 했길래 사치라고까지 했을까?

요즘 테레비에서 사극연속극을 보면 궁중의 왕비나
후궁들 뿐만 아니라 양반가의 안방마님들의 머리모양을
보면 머리카락을 꼬아서 엄청나게 크게 올리고
그기에다 브롯찌 비슷한 것을 몇개씩 단것을 봤을 겁니다.
그게 전부 자기 머리를 틀어 올려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가채 즉 남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쓴 거랍니다.
그런 걸 '다리'라고 하는데 일부지방에선 '달비'라고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다리를 궁중에 있는 왕비나 후궁, 상궁들이 했지만
점차 양반가의 여인네들이나 기생들까지 유행이 되었답니다.
학교 다닐 때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신 기억을 되살린다면
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여인네들(주로 기생들) 머리모양이
모두 다리를 올린 머리모양입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유행의 시작은
테레비에 얼굴 자주 비치는 소위 '스타'들이
먼저 하게 되면 그걸 보고서 너도 나도 따라서 하게 되어 유행이 되듯이
당시에도 그랬던가 봅니다.
물론 당시의 잘나가는 스타들은 궁중의 여인인 왕비나 후궁들이었습니다.
그걸 보고선 상궁들이 따라서 하게 되고,
양반집 마님들이 그걸 보고 또 따라서 하게 되면
일반 평민 여인네들도 너도나도 모두 따라서 하게 되었던 겁니다.
좌우간 여인네들이 다리를 올리는게 유행이니까
당연히 시집을 가는 신부들은 다리를 장만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다리의 가격이 문제였는데,
다리 한개 가격이 얼마였나 하면 한개가격이 논 5마지기 값이었답니다.
논 한마지기는 200평인데, 요즘 시세로 환산을 해보면...
같은 논이라도 지역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아무리 농지전용 지역이라고 해도 평당 3만원을 될 겁니다.
그러면 논 한마지기는 600만원이며 5마지기면 3천만원은 됩니다.
여자들 모양내느라 머리위에 얹는 가발 하나에 3천만원인 셈입니다.
물론 당시의 논값이 요즘처럼 그렇게 비싸진 않았을 것이라 여기지만
가발 하나값이 논 다섯마지기 값이라면 엄청나게 비쌌던 겁니다.

요즘 '꾸밈비'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데,
꾸밈비란 건 신부가 자기 몸을 꾸미는데 드는 비용이잖아요?
옛날 신부들 꾸밈비중 머리에 얹는 다리 하나에만 3천만원이 드는 겁니다.
그걸 요즘 신부들이 웨딩드레스를 빌려서 입듯이 잠깐 빌려서
쓰면 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자기껄로 하나를 장만해야만 했답니다.
요즘은 꾸밈비는 신랑쪽에서 주는 걸로 되어 있지만
당시 신부의 다리는 꼭 신랑쪽에서 해주진 않았답니다.
돈많은 집 신부는 당연히 자기네가 마련을 하고
신랑쪽에 부자라면 신부의 다리를 장만하여 함속에다 넣어서 보냈답니다.
좌우간 여자가 혼례식을 올릴 때는 모르지만
시댁에 들어가는 신행 때만큼은 꼭 다리를 쓰고 가야 했답니다.
그래서 돈이 없는 신부들은 그넘의 다리를 장만하지 못하여
결혼식을 올리고도 1년 또는 5~6년까지도 시댁으로 가지 못했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영조임금이 용단을 내려서
우선 솔선수범으로 궁중에 있는 왕비며 후궁들부터
다리를 쓰지 말고 쪽진머리에 비녀를 꽂도록 했답니다.
요즘 여자들도 그렇지만 당시의 여자들도 좀체 말을 안들었답니다.
임금이 하라고 시키는데도 임금 눈앞에 보일 땐 다리를 벗고
임금이 안보이면 다시 다리를 쓰는 등 한동안 고집을 부리다가
거의 1700년대 말경에야 궁중의 여인네들 뿐만 아니라
양반가, 일반 평민들, 기생들까지 다리를 쓰지 않고
평소에는 쪽진머리에 비녀를 꽂다가 특별한 날에만
족두리를 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족두리란게 별로 장식도 많이 붙지 않고 간단했는데,
3천만원짜리 가발을 쓰던 여인네들이 그런 정도에 만족할 순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족두리에다 옥이며 진주를 갖다 붙이는 등
좌우간 족두리에다가 돈을 들여 최대한 화려하게 보이게끔
하려고 한 것이 결국은 화관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신부들이 족두리를 쓰게 되었으니
신부들이 족두리를 쓰기 지작한지는 불과 300여년밖에 안된 겁니다.
좌우간 영조임금이 나라안 모든 여인네들로부터 욕얻어 먹을 각오를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도록 하였기에 망정이지 그게 그대로
계속 전해져서 오늘날까지도 신부들이 3천만원짜리
가발을 장만하지 못하면 시집도 못가는 상황이 되었다고 상상하면
요즘의 신부들 꾸밈비는 그야말로 껌값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