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지식/결혼상식

요즘 신부들 옛날 공주보다도 혼수 더 많이 해 간다?

홀기 2007. 4. 17. 16:31
작년에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전국 5대 도시의
신혼부부 294쌍을 대상으로 결혼비용 지출을 조사한 결과
신랑이 평균 9,513만원(주택비 8,465만원포함),
신부가 평균 3,984만원을 쓴 걸로 나타나
신혼부부 한쌍의 평균 결혼비용이 1억 3,500만이 넘는다고
주요 언론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든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 웨딩프랜드를 찾는 웨프회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가능한 결혼비용을 좀 줄이면서 알차게 준비를 할까하는 것임을
여러 게시판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신부들은 도대체 결혼비용을 얼마나 썼는지를
좀 알아 보기 위하여 자료를 뒤져 봤습니다만...
그에 대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더구나 옛날 공주들이 시집갈 때 혼수를 얼마나 해 갔는진 알 수가 없군요.

마침 조선시대 영, 정조시대 때 호조판서와 영의정을 지낸 바 있는
당시의 명재상 '정순홍'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얽힌 일화가 있더군요.
조선시대의 호조판서라면 요즘의 재정경제부 장관에 해당되며
영의정은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최고의 권력가인 바
재력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워낙 당시의 경제통이라서 그런지 딸을 시집보내면서도
남다른 방법으로 딸의 혼사 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순홍의 딸이 혼처를 정하고 혼례 날짜를 잡아 놓았는데
딸의 혼례가 가까워 오자 부인은 혼사 준비에 쓰일 비용이 걱정되었답니다.
그러나 정홍순은 딸의 혼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태평하기만 했답니다.
부인은 애가 탔지만 번번이 얘기할 기회를 놓쳐버리곤
혼사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을 때에야 정홍순이
부인에게 혼수 비용은 얼마나 잡아야 되느냐고 대해 물었답니다.

그래서 부인이 때는 이때다 하고는 얼런
'혼수 마련에 팔백량, 잔치 비용에 사백냥 정도면 되겠습니다.'라고
부인은 왜 이제서야 말을 꺼내느냐는 듯이 대답했답니다.
정홍순은 고개를 꺼덕이더니 날짜에 맞춰 준비하겠노라고만 했답니다.
그런데 혼사 전날이 되도록 주문해 놓았다는 딸이 갖고 갈 혼수와 잔치에
쓸 물건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더라 이겁니다.
답답해진 부인이 다그치자 정홍순은 허허 웃으며 말했답니다.

'내 분명히 일러두었는데도 물건과 음식을 보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나한테 돈 받기가 곤란해서 그랬나 봅니다. 
그렇다고 소인배들과 큰 소리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오
그러니 그냥 집에 있는 것들로 적당히 치릅시다.'

이렇게 하여 혼례는 평소 집에 있던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고
혼수도 장농안에 보관해놨던 옷감이며 몇 가지로 보내고 말았답니다.
당연히 사위나 사돈집에선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상대가 워낙 지체가 높은 집안이라서 겉으론 말도 못하고...
사위는 혼례를 치른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처가에 발길을 뚝 끊어버렸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정홍순은 딸과 사위를 불러
함께 어디를 가자고 하곤 집을 나서더란 겁니다.
사위는 못마땅해서 뽀르퉁한 얼굴을 하곤 장인의 뒤를 따랐답니다. 
정홍순이 한참을 가더니 웬 새집 앞에서 멈춰 섰답니다.

'내 지난날 너희들 혼례에 쓸 비용을 물으니 무려 천 이백냥이라고 하더구나.
하루 즐겁자고 그 많은 돈을 쓰느니 차라리 혼례는 간소하게 치르고
그 비용을 따로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돈을 불려서 이 집을 짓고, 또 얼마간의 농토를 사두었으니
이만하면 너희가 평생 살아가는데 부족하지 않을 게다.'
비로소 장인의 마음을 알게 된 사위는 넙죽 큰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과연 당시의 경제통다운 일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의 1,200량이란 돈이 오늘날 얼마나 되는 돈일까?
집안에 평소에 보관하고 있던 걸로 딸의 혼사를 대충 치룰 정도면
꽤나 재력이 있었을 터이고, 그만한 집안이라면
딸을 시집보내면서 소홀히 하지 않을 정도의 비용을 잡았을 것입니다.
아마 엄청난 금액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날 돈으로 환산을 해 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영조, 정조 시대라면 18세기 때인데,
조선시대 때도 화폐가치나 물가 변동이 상당히 많았었다고 합니다만
영, 정조시대인 18세기 땐 크게 변동이 없었다고 하는군요.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인 쌀값을 비교해 보면
그 가치를 쉽게 따져 볼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당시의 쌀값이 얼마정도나 되는지를 알아 본 결과
당시 쌀 1섬의 평균적 시세를 5량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쌀 1섬과 오늘날의 쌀 1섬은 양이 다르답니다.
좌우지간 그런 걸 복잡하게 계산을 하신 분(대학교수)께서
당시의 쌀 1섬은 오늘날 우리 돈으로 약 10만원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결국은 당시의 1량이라는 돈의 가치는 오늘날 2만원의 가치란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1,200량은 오늘날 2,400만원정도의 돈인 것입니다.
그중에서 혼수비용이 800량이니깐 오늘날 1,600만원이며,
결혼식 비용이 800만원인 셈이 됩니다.

결국은 당시의 영의정 딸이 시집가는데 드는
혼수비용이며 잔치비용이 2,400만원정도였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좌우간 정순홍 대감은 그 돈을 딸의 결혼비용으로 써버리지 않고
잘 관리하여 딸과 사위가 살 새집을 한 채 마련하고
또 얼마나 되는진 모르지만 농토까지 마련하여 줬다고 하니
정순홍 대감의 '재테크'수완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당시의 집값이나 땅값은 오늘날처럼
엄청나게 비싸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요즘의 신부들이 조선시대 영의정의
딸이 시집갈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들인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조선시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정승의
딸 혼수비용을 당시의 임금(세조)이 공주의 혼수에 준하여
하사하였다고 얘기했습니다만 세종임금 때부터 백성들이 혼례시 근검절약을 계도하고
왕실에서 스스로 솔선수범을 보였다고 하니 공주의 혼수라고 해도
영의정 딸의 혼수에 비해 크게 많지는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요즘 신부들이 조선시대의 공주보다도
더 많은 혼수를 해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