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지식/결혼상식

딸을 '엿동고리'라고 하는 사연.

홀기 2007. 4. 17. 16:29
옛날에 딸을 낳으면 '엿동고리를 낳았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엿동고리'란 '엿을 넣은 동고리'를 말하는데,
'동고리'란 가느다란 버드나무 가지로 촘촘히 엮어서 짠
두껑이 있는 상자를 말합니다.
옷감이나 책을 담아 두기도 하고 혼사나 제사 등 큰 일을 치룰 때
떡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특히 딸이 시집을 갈 때 싸보내는 잔치음식인 '이바지'를
담아서 두껑을 덮은 다음에 머리에 이거나 지게에 지기도 하고
말 등에다 실을 수도 있는 다목적용 용기입니다.

그 동고리에 엿을 담은 것이 '엿동고리'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딸을 '엿동고리'라고 하였을까?
딸을 낳아 키워서 이담에 시집을 보내게 되면
이것저것 동고리에 뭘 담아서 보낼 일이 많은 것입니다.
물론 시집으로 보내는 일도 많았지만 반대로
딸의 시댁으로부터 동고리를 보내오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딸을 낳게 되면 이담에 '동고리'를 주고 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며 동고리중 대표적인 것이 '엿동고리'이기에
'딸은 엿동고리'라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딸을 시집보내면 이것저것 챙겨서
보낼 일이 많은 것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시집을 보낼 때도 그렇지만 보낸 후에도 끊임없이
뒷바라지를 해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이제 설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설날이 다가 와도 별다른 준비를 하는게 없지만
옛날에는 이맘 때쯤이면 집집마다 엿을 만들 때입니다.
엿은 그냥 먹기도 하지만 엿을 묽게 한 것을 조청이라고 하는데,
조청은 강정, 다식, 산자 등 한과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되는 재료이며 음식을 만들 때도 들어가기 때문에
설날을 앞 둔 연말인 섯달에 집집마다 엿을 만드는데,
보리를 싹을 틔워서 말린 엿기름을 갈아서 고두밥과 함께
골고루 ?은 다음 물을 부어 따뜻하게 덮어 두면
발효가 되어 전분이 당분으로 변하여 달콤한 맛이 납니다.
이를 서울지방에선 '식혜'라고 하며, 남쪽지방에선
감주 또는 단술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 식혜를 걸러서 그 물을 오래동안 끓이면 물이 쫄아 들고
당분만 남아 걸쭉한 엿이 됩니다.
이걸 적당한 크기로 둥글납작하게 만들어 식히면 '붉은색'의 강엿이 됩니다.
이렇게 만든 강엿은 오랫동안 보관을 해도 변하지가 않으며
필요할 때마다 중탕으로 녹여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강엿을 그냥 먹을 수도 있지만 잘못하다간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강한 바 이 강엿을 부드럽게 한 다음 길게 늘여서 겹치고,
또다시 늘여서 겹치는 식으로 반복을 하게 되면
엿속에 공기가 함유되어 흰색의 부드러운 엿가락이 됩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적당하게 잘라서 서로 붙지 않게
밀가루를 묻히거나 콩고물을 묻히거나 하는데,
딸이 시집을 갈 때 보내는 '이바지' 음식으로 빼놓지 않고
보냈던 것중 하나가 바로 이 가래엿입니다.

엿이 대표적인 한국식 과자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엿이란 것이 찹쌀떡처럼 달라 붙는 성질이 있어서
부부금슬이 좋게 하는 것은 물론 시댁 식구들이 이 엿을 먹고
우리 딸을 좀 잘 봐달라는(잔소리를 줄이는)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시집을 갈 때 그렇게 엿을 해서 보내기도 하지만
시집을 간 후에도 설날을 앞 두고 엿을 만들게 되면
만든 엿을 '동고리'에 차곡차곡 넣은 즉 '엿동고리'를
딸네집(시댁)으로 보내곤 했답니다.
딸의 친정에서 이렇게 '동고리'를 보내오면 시부모들도
그냥 얻어 먹고만 말고 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시 답례로 '동고리'에 음식을 담아서 보냈습니다.
예를 들어 시집이 산골짝이라면 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쌀이 귀하기에 엿은 만들지 않지만 대신에 산이 가깝기 때문에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더덕이나 산나물과 같은 것을 담아 보내기도 하고
특히 명절을 앞 둔 때에는 꿩을 잡아서 담아 보내기도 합니다.
'꿩대신 닭'이란 말이 있듯이 만두속이나 냉면 육수는
꿩으로 만들어야 제 맛이지만 꿩이 귀한 평지에선
꿩을 사용치 않고 닭을 사용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새색시가 처음 시댁에 도착하여 시부모님께 첫 인사를 드리는
'현구고례' 때 시부모님께 올리는 '폐백(음식)'중에서 시어머니에겐
육포나 닭은 올리는데 사실 원래는 닭이 아닌 꿩을 올렸는데
꿩은 산골이 아니고선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꿩 대신에 닭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쌀농사를 많이 짓는 평지족에선 쌀로 만드는
떡이며 엿을 해서 보내고, 반대로 쌀이 귀한 산골쪽에선
떡이며 엿대신 더덕이며, 도라지, 산나물이나 꿩을
보내는 등 양쪽 사돈간에는 수시로 음식을 담은
'동고리'가 오고 가는 것은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요즘은 교통이 좋기 때문에 서울 신부가 지방으로 시집을 가기도 하고
지방의 신부가 서울로 시집을 오기도 하지만
옛날엔 교통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집을 가도
시댁과 친정이 그리 먼거리가 아니고 이웃 마을 또는
고개넘어 좀 먼 마을인 즉 같은 지역안인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래서 시골의 경우에는 5일마다 한번씩 열리는 장날이면
장에서 사돈끼리 만나는 경우도 자주 있었을 겁니다.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사돈에게 울지 않는 장닭을 판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닭중에서 장닭 한 마리가
도대체 울지를 않으니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장에 나가 팔기로 하고 장닭을 팔러 나갔는데...
닭은 새벽에 정해진 시간에는 어김없이 울게 되어 있는데...
암탉은 울지 않고 숫닭인 장닭만이 웁니다만
장닭이 울지 않으면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날이 되어 아침 일찌기 닭들이 닭장을 나오기 전에
울지 않는 장닭을 잡아서 발에다 새끼줄을 묶어서 장에 갖고 나가서
새끼줄 한쪽 끝을 한쪽발로 밟고 서서 닭살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마침 장에 나온 사돈영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인사치례를 마치곤

'사돈어른 무얼 팔어 나오셨수?'
'이 장닭을 팔려고...'
'아따 그놈 잘 생겼다. 울음소리도 커지요?'

닭이란 것이 아무 때나 울지를 않는 것이니깐
당장에 시험해 볼 염려도 없고 하여 에라 모르겠다.

'잘 울고 말고요.'

그래서 사돈한테 값을 쳐서 받고 그 장닭을 팔았답니다.
그런데 다음 장날 장터에서 또 사돈을 만났는데...
닭을 사간 사돈이 만나자 마자 울지도 않는 닭을 자기에게
속여서 팔았다고 야단이 난 답니다.
사실 속여서 팔긴 했지만 잘못하다간 사돈간에
장터바닥에서 싸움이라도 날 판이라서 이를 어떻게
모면을 하나 궁리를 한 끝에...

'사돈어른 닭에게 무얼 먹였수?'
'아따 잘 먹였지... 싸라기도 주고, 수수쌀도 주고...'
'혹시 댁에 암탉은 있수?'
'그럼, 우리 집에도 네마리나 되고, 동네 암탉이 수도 없지...'
'제에길, 그러면 그렇지... 맨날 배부르게 잘 처먹지...
주위에 온통 암탉 투성인데... 그놈이 뭐가 부족해서 울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