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지식/결혼상식

함은 사고 파는게 아니다.

홀기 2006. 3. 21. 12:45

요즘 흔히 '함을 판다' 또는 '함을 산다'만 말을 사용하는데, 함은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함'이란 것은 우리나라 전통혼례 관습중 신부쪽에서 결혼날짜(택일)를 받아서 연길을 보내오면 그에 대한 답례로 신랑쪽에서 신부쪽에다 '혼서'를 보내면서 신부의 옷가지며 몇 가지 예물을 넣어서 보내는 '납폐' 절차에서 그런 혼물을 넣는 상자인 것입니다.

납폐는 어려운 한자말입니다만 그걸 흔히 쉬운 말로 '함을 보낸다'고 하는데, 함은 누가 갖고 가는가 하면 신랑 집안의 집사나 하인중 후덕한 사람이 매고 갖다 줬습니다. 집안에 하인을 둘 형편이 못되는 집안에선 친척중 후덕한 남자가 매고 갖다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을 지고 가는 '함진아비'는 지체가 낮은 하인인 셈입니다. 오늘날은 그런 하인이 없으니까 그 역할을 신랑 친구들이 대신하게 됩니다만 어디까지나 함을 져다 주는 하인역할인란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인이 함을 지고 신부집에 갖고 가면 함을 받는 절차를 거쳐 함을 받고는 한짐아비에게 배불리 먹이고, 돌아갈 때 여비로 쓰라고 노자돈을 넉넉히 챙겨 준 것인데, 그 노자돈이 오늘날 함진아비가 받는 '함값'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함을 갖다 주고 돈을 받으니까 함을 팔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함진아비가 장난삼아서 '함사려'라고 할 수는 있지만 함을 받는 신부쪽에선 어떤 경우에도 '함을 산다' 또는 '함값'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함을 보내는 이유는 바로 '혼서'를 보내기 위함인데, 혼서란 것은 내용을 보면 '당신네 딸을 우리 며느리로 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격식을 차려서 정중히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은 '며느리로 받아 준다'는 며느리 합격증인 셈입니다. 그래서 옛 여인네들은 남의 가문의 며느리로 채택된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그 혼서를 생명과 같이 중하게 여겨서 시집을 갈 때도 갖고 가서 장농속에 깊이 감춰 뒀다가 나중에 죽을 때 관속에다 넣어 주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소중한 것이 바로 함인데 그걸 돈주고 사고 판다고요?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죠.

 

하지만 요즘 남녀평등 세상에서 혼서 즉 함을 받는다는 것은 여자의 입장에선 무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요즘은 함은 사실상 무의미 한 것이며, 오히려 신부집의 입장에선 번거로운 절차밖에 되지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함은 안주고 안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굳이 하겠다면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고 간단하게 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랑친구들을 동원하여 난리법석을 떨지 않고 신랑이 직접 갖다 주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그렇게 신랑이 직접 함을 갖다 줄때도 '함값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신랑에게 함값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함은 돈주고 사는게 아닌 바 함값이 될 수가 없으며 진짜 의미인 함진아비의 노자돈이라면 더욱 안될 말입니다. 함진아비는 '하인'입니다. 사위은 백년지객이라고 하여 큰 평생동안 큰 손님인데 그런 사위를 일개 하인 취급하여 노자돈을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겠죠? 그래서 신랑이 직접 함을 가져 올 때는 함값을 줘선 안되는 겁니다.